긍휼히 여기며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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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목사 작성일16-06-22 12:47 조회5,9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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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의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풍요로워지고 화려해지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무섭고 끔찍한 일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보험금을 타먹으려고 가족의 생명을 쉽게 희생시키지 않나, 묻지마 폭행이라든지, 보복운전이라든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사악하고 무자비한 면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의 시대만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자비한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 시대를 주름잡던 로마제국은 화려함 속에 가려진 잔인함이 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긍휼이나 자비는 안중에도 없었던 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로마의 한 철학자는 긍휼을 가리켜 ‘유약한 영혼의 병’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잔인한 짓을 자행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태어나면 그 생사를 아버지가 결정해 버립니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 올리면 살리고, 아래로 내리면 죽여 버렸습니다. 노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죽이거나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도 무방했다고 합니다.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로마라는 제국은 완전히 이상한 나라가 되는 것이지요. 로마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하나가 콜로세움이라는 경기장 아닙니까? 지금은 한 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이지만 사실 그곳은 맹수와 사람을 싸움 붙여 피 흘리게 해 놓고 열광하던 광란의 현장 아닙니까? 그렇다면 유대인들이라고 해서 로마 사람들과 달랐을까요? 유대인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기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을 바라보면 개처럼 여기는 괄시하고 무시하는 모습들이 있었고, 심지어 지옥의 땔감에 불과하다며 무자비하게 대했던 그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봐도 그렇고, 성경의 예언을 봐도 그렇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 이하를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타락할 것을 말하는데, 그 중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무정하다고 했습니다. 정이 없다. 무자비한 인간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겁니다. 정말 이 말씀대로 인간성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무서워집니다.
이렇게 살벌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살벌한 세상을 향해 마태복음 5장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복되다는 겁니다. 얼핏 생각하면 수긍이 안갑니다. 살벌한 세상이기에 더 강해지고, 거칠어져야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세상은 그렇다하더라도 예수 믿는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참된 긍휼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때문에 긍휼히 여기사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고통과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최고의 긍휼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긍휼히 여겨 주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 은혜의 삶, 행복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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